술을 마신 다음 날 두통이나 근육통 때문에 진통제를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. 특히 약국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**아세트아미노펜(acetaminophen, 국내 대표 제품: 타이레놀)**은 해열·진통제로 자주 선택됩니다. 그런데 음주 후 이 약을 복용해도 괜찮을까요? 결론부터 말하자면, 술과 아세트아미노펜을 함께 복용하는 것은 간에 큰 부담을 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.
아세트아미노펜은 어떤 약일까?
아세트아미노펜은 1950년대 초 미국에서 처음 상용화된 해열·진통제입니다. 원래의 유래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가는데, 당시 페나세틴(phenacetin)이라는 약물이 인기를 끌었습니다.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페나세틴의 독성이 문제되었고, 그 대안으로 더 안전한 대사산물인 아세트아미노펜이 개발되어 오늘날까지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.
현재 아세트아미노펜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해열진통제 중 하나입니다. 일반적으로 두통, 발열, 감기, 생리통, 근육통 등 다양한 통증 완화에 효과적이며 위장 자극이 비교적 적어 공복에도 복용 가능한 장점이 있습니다.
그런데, 술과 함께 복용하면 왜 위험할까?
아세트아미노펜은 대부분 간에서 대사되며, 이 과정에서 **소량의 독성 대사산물(NAPQI)**이 생성됩니다. 평소에는 이 물질이 간에서 **글루타티온(glutathione)**이라는 해독 성분에 의해 빠르게 중화되어 큰 문제가 없지만, 다음과 같은 경우 위험성이 커집니다:
- 과다 복용 시
- 간 기능이 저하된 경우
- 술을 자주 마시는 경우
술을 마신 후 간은 이미 알코올 대사로 인해 과부하가 걸려 있는 상태입니다. 여기에 아세트아미노펜까지 복용하면 독성 대사산물의 축적이 급증하고, 해독 기능이 떨어져 간세포 손상 또는 급성 간염, 심하면 **간부전(급성 간 기능상실)**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.
실제로 미국에서는 아세트아미노펜 과다 복용이 약물 유래 간손상의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이며, 특히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들에게서 위험성이 더 높다고 보고된 바 있습니다.
그렇다면 언제 복용해도 괜찮을까?
아세트아미노펜은 적절히 복용하면 매우 안전한 약입니다. 문제는 “언제, 어떤 상황에서” 복용하느냐입니다.
음주 직후 또는 다음 날에도 숙취가 남아 있다면, 아세트아미노펜 복용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. 대신 간 대사 부담이 적은 이부프로펜 계열의 진통제가 더 나을 수 있지만, 이 역시 위장장애나 출혈 위험이 있어 공복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.
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을 확인하세요:
- 술을 마신 지 최소 12시간 이상 경과했는가?
- 숙취 증상이 거의 없고, 간에 무리가 없을 만큼 상태가 회복되었는가?
- 정상 용량(성인 기준 1회 500~1,000mg, 하루 4,000mg 이내)을 지키는가?
그렇다면, 카페인과 아세트아미노펜의 조합은 괜찮을까?
의외로 많은 진통제 제품들이 아세트아미노펜에 카페인을 함께 함유하고 있습니다. 그 이유는 카페인이 진통 효과를 높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. 카페인은 중추신경계를 자극하여 아세트아미노펜의 진통 작용을 보조하고, 피로감과 졸림을 줄여주는 부가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.
일부 연구에서는 카페인이 첨가된 아세트아미노펜 복합제가 두통이나 편두통에 더 효과적이라는 결과도 있습니다. 따라서 적절한 용량이라면 두 성분의 조합은 비교적 안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.
다만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.
- 과도한 카페인 섭취는 심장 두근거림, 불면증, 위장 자극 등을 유발할 수 있으며
- 특히 카페인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(커피·에너지음료 등)은 복합제 외 추가 카페인 섭취를 자제해야 합니다.
결론적으로, 카페인과 아세트아미노펜의 조합은 대부분의 경우 안전하지만, 복용량과 개인의 카페인 민감도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, 함량을 잘 확인한 후 복용하는 것이 좋습니다.
마무리: 간은 재생되지만, 한계가 있다
아세트아미노펜과 술은 평소엔 각자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물질이지만, 같은 날 섭취하면 간에 치명적인 조합이 될 수 있습니다. 특히 음주 후 진통제를 복용할 땐 습관적으로 타이레놀을 선택하지 말고, 몸 상태와 약 성분을 꼼꼼히 확인해야 합니다.
결국, 간 건강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음주를 줄이고, 약 복용 시기를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입니다.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숙취지만, 잘못된 약 복용은 예상치 못한 큰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, 꼭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.